역자 서문
이 책의 한글판 번역 작업을 함께 한 우리는 오랜 시간 삶을 공유한 동료입니다. 교사교육자인 우리는 어린이 교육의 수많은 질문, 답이 없는 모호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독립적인 개체인가?’
‘발달하는 어린이란 형상은 윤리적인가?’
‘발달에 근거하여 어린이를 관찰하는 것은 교육적인가?’
Bloomsbury 출판사의 「Postdevelopmental approaches to childhood」 시리즈는 이러한 질문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2023년 출판된 [Post developmental approaches to pedagogical observation in childhood]와 마주치며 우리는 강렬한 집단적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어린이 교육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중심에는 ‘존중’이란 고갱이가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무언가를 존중하는 것은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겠지요.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 존재를 가두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들은 이른바 교육자/연구자라 불리는 이들이 심리학, 특히 발달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어린이의 특성과 행위를 규정하고 또 고정/교정해 왔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또 어린이 관찰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해 왔던 발달(주의)을 향한 대중의 굳건한 믿음도 뒤흔듭니다. 발달(주의)의 자리에 포스트-발달적 접근을 대체하면서, 관계/맥락 속 어린이의 풍부한 삶과 어린이를 포함한 물질의 행위성을 다양한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포스트post’는 시점을 기준으로 무언가의 ‘~(이)후’를 의미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다는 뜻을 담은 접두어이기도 하지요. 또는 무언가의 한계를 넘어 대안적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 무언가를 반대하며 탈(脫), 즉 벗어 던진다는 의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내건 ‘포스트-발달(적 접근)’은 어린이 교육에서 발달(주의)을 완전히 부정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발달(주의)을 지지하며 그 전통을 계속 이어가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고요. 저자들은 어린이 교육에서 그동안 강력한 위치를 차지해 왔던 발달(주의)의 한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그리하여 어린이(교육)와 관찰에 대해 발달 너머의 새로운~다양한~가능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화 나누기를 제안합니다.
어린이 교육과 관찰에서 발달 패러다임은 오래도록 대진리(Truth)로서 힘을 발휘해 왔습니다. 이 책은 그 절대반지와도 같은 발달의 이야기에 도전하는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저자들은 탈식민적 장소 리터러시, 사회-물질적 관점, 생태학적 관점, 포스트휴머니즘 및 신물질주의와 같은 다양한 철학적 관점들과 회절하며, 익숙하고 길이 들여진 생각의 습관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인간(성인)이 주체가 되어 어린이 개체를 관찰해야 하는가?’
‘(아주 어린) 어린이가 또는 어린이와 함께 관찰할 수는 없나?’
‘어린이의 발달을 규정하고 발달에 들어맞도록 행동을 처방/교정하는 것이 관찰의 목적인가?’
‘교육적 관찰은 누구/무엇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연령별 체크리스트와 루브릭으로 어린이를 판단해도 되는가?’
‘관계/맥락과 인간-너머 존재들의 행위성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사실, 책의 이야기를 옮기는 작업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들이 생성하거나 빌려 온 개념/테제의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교육의 장에서 일어나는 관찰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번역 작업의 지난함에 비할 바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투박하게나마 작업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다시 욕망합니다. 어린이의 발달-너머 풍부한 삶과 교육의 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사건에 관해 대화를 계속해 가기를……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 교육자로서 나누어야 할, 가능성을 여는 질문과 함께!
유난히 길었던 2024년의 겨울을 지나, 다시 찾아온 시절에
옮긴이들 함께 씀
차례
일러두기
역자 서문
저자 소개
시리즈 편집자 서문
서문
01 / 리듬: 아동기와 교실 관찰에 대한 포스트휴먼 관점
02 / 아동기 예술에서 함께하기: 어린이와 함께 관찰하기
03 / 움직임과 동시성 그리고 안무: 어린이 그림과 조율하기
04 / 어린이 교육에서 리터러시 관찰 도구 해킹하기
05 / 영아와 함께 관찰을 재개념화하기: Aotearoa 뉴질랜드의 관점
06 /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린이 예술 교사교육에서 관찰을 사색하기
07 / 따로-함께: 세대 간 연구를 통해 어린이의 물질/디지털/아날로그 참여를 탐구하기
08 / Hop(scotch) 스튜디오, 숨겨진 모성, 그리고 조용하고 겸손한 관찰자
09 / 포스트휴먼 아기: 아기의 첫해를 재개념화 하기
10 / 아동기 예술의 포스트-발달적 관찰에서 사진과 비디오에 대한 실험적 분석: Barthes의 [카메라 루시다]와 함께 사유하기
찾아보기
역자 약력
김미진 인제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병만 경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서보순 동의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손유진 동의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이경화 국립부경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정혜영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